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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학원_본스타_구리캠퍼스_영화 <아가씨> 박찬욱감독 인터뷰.

세민님 | 조회 135



                            
                                                                             

매혹적인 이야기 [아가씨]<br> 박찬욱 감독 인터뷰 네이버 영화 매거진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매혹적인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장편영화 [아가씨]는 새러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한 작품이다. 속고 속이는 배신의 드라마인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박찬욱 감독의 손을 거치며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었다. 세 부분으로 나뉜 영화는 반복과 차이의 플롯을 통해 긴장감과 재미를 만들어낸다.

영화 [아가씨]는 한 번 봐선 제대로 감상하기 힘든 꽉 찬 영화다. 섬세하게 구성된 미장센과 디테일은 마치 캐릭터처럼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일본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대저택과 서재, 화려한 의상과 소도구, 1930년대라는 시대 배경... 그리고 이 시공간 안에서 인물들은 음모를 꾸미고, 두 여자는 자신들의 진짜 욕망을 발견한다. 박찬욱 감독을 만나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역시 [아가씨]가 그의 영화들 중 가장 '반복 관람'을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 경고 : 본 매거진에는 영화에 대한 직·간접적인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 시청 후 읽어주세요.


원작 - 생생한 묘사, 흥미로운 구성
    

1. 후지와라 백작(하정우), 하녀 숙희(김태리),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그리고 코우즈키(조진웅)    

2. 현장의 박찬욱 감독    

Q. 지난번 [스토커](2013) 인터뷰 때, 차기작에 대해 "남성적이고... 실내가 아닌 밖에서 벌어지는 아주 난폭한 영화"가 될 거라고 하셨는데...

(작은 한숨) 글쎄 말이에요...

[스토커] 박찬욱 감독 인터뷰 링크
http://movie.naver.com/movie/magazine/magazine.nhn?nid=1658

Q. ...그런데 이번에 [아가씨]는 "여성적이고 실내에서 벌어지는 아주 예쁜 영화"입니다. '난폭한 영화' 프로젝트는 잠시 미루신 건지요.

그건... 날아갔어요. 할리우드 프로젝트였어요. 서부극인데, 그쪽에서 받은 시나리오를 너무 많이 고쳤고, 그걸 프로듀서가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나도 원래 시나리오로 돌아가는 걸 거부했고. 음... 그쪽이랑은 못하겠더라고.(웃음)

Q. [아가씨]는 [올드보이](2003)의 프로듀서였던 임승용 '용필름' 대표의 제안이었는데요, 그 시점이 언제였나요?

[스토커] 전이었죠. 임 대표가 오래 기다려 줬어요.

    

1. 현장의 박찬욱 감독과 하정우, 김민희    

2. 원작 소설에서 "영화로 옮기면 더욱 좋아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 숙희가 히데코의 입안을 골무로 문질러 주는 대목이다.    

Q. 원작 소설인 '핑거스미스'를 처음 읽으셨을 때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점은 무엇인가요?

소설 전체를 다 읽기 전에 이미 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1부도 다 읽기 전이죠. 그 시대와 장소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생생했어요. 영국 소설 특유의 그런 거 있잖아요. 그 시공간에서 살다 온 사람이 쓴 것 같은 생생한 묘사죠. 아마 소설의 첫 장면이 극장에 여주인공이 소매치기하러 가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이미 끌렸어요.

Q. 이 대목이 영화에선 빠진 거군요.

각색을 할 때 원래는 있었어요. 조선에 있는 어떤 큰 절에서 초파일 연등 행사를 하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끝단이가 하녀 옷을 입고 일본 관광객 중 한 명인, 잘 차려입은 일본 장교에게 접근해요. 그러면서 말을 걸죠. 자기가 모시고 온 아가씨가 절을 다니며 돌아가신 부모님 재를 올리는데, 그만 이 야만스러운 조선에서 지갑을 소매치기당했다고. 그러면서 돈은 좀 빌려 달라고 하죠. 이때 아가씨가 저기 계시다고 하는데... 바로 예쁜 기모노를 입고 귀족 아가씨 행세를 하는 숙희(김태리)예요. 실현되진 못했지만, 영화를 이렇게 시작하려고 생각했을 만큼 소설의 첫 에피소드부터 좋았어요. 그리고 하녀가 골무로 아가씨의 이를 문질러 갈아주는 장면...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진 않는데, 그 장면이 가장 좋았던 기억이 나요. 영화로 옮기면 더욱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당연히 소설의 1부 끝난 후의 반전은 쇼킹했고요. 2부에 가서 같은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되는데, 1부를 본 후에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인지 알겠다" 싶은 상황에서 같은 사건을 다르게 본다는 게 좋았어요.

배우 - 김태리라는 신인
    

1. 히데코와 숙희의 관계는 이 영화의 중심 플롯을 이룬다.    

2. 두 여자 캐릭터의 유사성을 드러내는 장면    

Q. 신인배우 같은 경우 연기에서 숙지하고 연습한 느낌이 나기 마련인데, 숙희 역의 김태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떨 땐 마음대로 막 한다는 느낌도 주고요. 독특한 연기 톤을 지녔습니다.

영화는 처음이지만 연극을 했어요. 대학 4년 동안 연극반이었고, 졸업 후에 2~3년 정도 프로 극단에 있었어요. 캐릭터 구축하는 훈련은 되어 있었죠. 연극배우의 경우 나쁜 버릇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역시 훌륭한 건 발성이었어요. 발음이 분명하고 잘 전달된다는 건 강점이었죠. 과장된 연기를 싫어하는 타입이었고요. 배우 본인의 성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휩쓸리거나 쫓아가는 걸 싫어해요. 뭐가 되었든 자기 식대로 생각하고 연기하고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고민하고 갈팡질팡하는 게 없다는 거죠. 현장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시하진 않았어요. 대신에 촬영 전에 사무실에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죠. 스토리보드 작업도 병행하고 있어서, 이렇게 찍을 거라고 보여줬어요. 미리 머릿속에 그리는 작업을 많이 한 거죠.

Q. 아가씨 히데코 역에 김민희는 거의 유일한 선택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김태리와 어떤 장면에선 쌍둥이처럼 보이더군요. 특히 코르셋을 조여주는 장면 같은 경우...

그 신의 끝에서 히데코가 숙희를 돌려세우고 그걸 뒤에서 카메라로 잡았을 때, 머리 모양과 장식이 똑같죠. 그 모습이 좋아서, 편집할 때도 마지막 프레임까지 최대한 길게 썼어요.

    

1. 후지와라 백작 역의 하정우. 일본 귀족 행세를 하는 사기꾼이다.    

2. 코우즈키 역의 조진웅. 장서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 찬, 변태적인 인물이다.    

Q. 오디션에 여러 조건이 있었겠지만... '김민희와 닮을 것' 같은 부분도 염두에 두셨나요?

그렇게 까다롭게 하면 배우 고르기가 힘들어서...(웃음) 그러진 않았어요. 희망만 있었죠. 분장이나 의상으로 비슷하게 만들자고 생각했던 거고요.

Q. 숙희와 히데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계속 변해가잖아요. 연민, 질투, 사랑... 이런 변화를 미장센에 반영시킨 부분이 있으신가요?

음... 그렇게 기획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요? 제가 연출로 보여주기보다는, 그냥 배우의 연기에 맡겼어요.

Q. 후지와라 백작 같은 경우 매우 야비하고 비열한 캐릭터인데, 하정우라는 배우가 맡음으로써 다른 느낌이 배어들어 간 것 같습니다. 조금은 순수한 남자의 느낌이랄까요?

그게... 원작 소설의 '젠틀맨' 캐릭터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어쨌든 여자들에게 매력 있는 남자인 건 맞는 거죠. 잘 속여 넘기고 귀족으로 꾸몄을 때 손색 없고... 그런데 후지와라를 너무 장르영화 캐릭터처럼 완벽하고 흠 하나 없는 사기꾼으로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 면도 있지만 조금은 어수룩하고 빈 틈도 있고 허술하길 바랐죠. 원작과 달라진 게, 영화에선 숙희와 히데코 두 여자가 정말 서로 사랑하고 공모하잖아요. 후지와라는 그런 관계를 눈치를 못 채는 사람인 거죠.    [아가씨]에 유머를 부여한다면 후지와라 백작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하정우의 모습이 있어요. 엉뚱한 순간에 '허당'인 그런 느낌?(웃음) 귀족 행세를 하지 않고 자연스레 본래 모습을 드러낼 땐 정말 보통 사람 같은 느낌도 나야 했고요. 그런 면에서 하정우가 필요했죠. 그래서 하정우가 필요했고요.

    

1. 히데코의 이모이자 코우즈키의 아내 역을 맡은 문소리는,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다.    

2. 조진웅의 긴 손가락 때문에 만들어진 장면. 아내와 어린 히데코의 얼굴을 손으로 찍어 누른다.    

Q.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이긴 하지만, 변태스러운 코우즈키 역을 맡은 조진웅에겐 기본적으로 '사람 좋은' 느낌이 있습니다. 조금은 의외의 캐스팅이었습니다.

[아가씨]를 준비하면서 영국 BBC에서 만든 TV 미니시리즈 '핑거스미스'(2005)를 봤어요. 그렇게 재미있진 않았는데... (코우즈키에 해당하는) 크리스토퍼 역을 맡은 찰스 댄스는 제가 예전부터, [왕좌의 게임](2011~ ) 훨씬 이전부터 좋아하는 배우였어요. 그런데 원작 소설에 있는 캐릭터 이미지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찰스 댄스는 키가 크고(191센티미터) 무인 같은 느낌이 강한데, 책벌레 역에도 잘 맞았던 거죠. 그걸 보면서 [아가씨]에서 코우즈키의 비중을 더 키우고 더 흥미로운 인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의 책벌레 이미지와는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를 보면서 조진웅과 언젠가는 한 번 함께 하고 싶었고요. 참, 젊은 시절부터 노인까지 아우를 수 있는 연기력이 필요했던 것도 조진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예요. 그리고 코우즈키의 변태스러움은... 너무 병적이어서 역겹기만 한 것에 머물러서는 곤란했어요. 역겹지만 불쌍할 수도 있는 느낌? 병든 사람이니까요. 그런 것까지 고려했을 때 조진웅은 적임자였죠.

Q. 캐스팅 발표 났을 땐 과연 어울릴까 싶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 방식으로 어울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재밌는 장면이 있어요. 테스트 촬영할 때 보니까 조진웅의 손가락이 꽤 길더라고요. 어린 히데코와 아내(문소리)의 얼굴을 손으로 막 뭉개는 장면이 없었는데, 촬영 날 아침에 만들었어요. 원래는 때리는 설정이었는데 그렇게 바꾸었더니, 훨씬 더 모욕적인 느낌을 주더라고요. 키가 크고 손가락이 길다는 배우의 신체적인 조건을 활용한 장면인데...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요.(웃음)

공간 - 양식의 충돌
    

1. 영국식과 일본식이 혼재된 코우즈키의 저택. 이 집은 이 영화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다.    

2. 히데코의 서양식 방과 숙희의 일본식 숙소는 문 하나를 가운데 놓고 붙어 있다.    

Q. 설정상 식민지 시대를 택한 건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를 선택했을 때, 우리에겐 시대성을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부분에서 [아가씨]는 표면적으로는 자유롭다는 느낌입니다.

코우즈키라는 캐릭터에 이미 전제되어 있는 거죠. 코우즈키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도, 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코우즈키가 만든 공간인 거고요. 그의 대저택은 [아가씨]의 다섯 번째 주인공이고, 영화 내내 드러나요. 배경으로써, 굳이 말로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언급을 계속하고 있는 거죠.

Q. 일본식과 영국식이 결합된 굉장히 독특한 건물입니다. 같은 집 안에서 신발을 벗어야 하는 곳이 있고 신어야 하는 곳이 있죠. 이런 양식의 충돌이 중요하다고 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작의 배경을 식민지 시대 조선으로 바뀌었을 때,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요소가 그거라고 봤어요. 일본엔 실제로 한 공간 안에, 정원이 있고 서양식 양관과 일본식 화관이 공존하는 그 시절의 저택들이 많이 있어요.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그것에 매혹되고 경도된 사람들이 만든 것이죠. 당시 일본인들은 실크 햇을 쓰고 무도회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속 코우즈키의 집처럼 완전히 한 몸으로 붙어 있는 극단적인 케이스는 드물어요. 그 중 하나를 찾아서 로케이션 촬영을 한 거고요. 어쩌면 그게 그 시대 상류 계급이 지닌 내면의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인 숙소는 조선 전통 가옥이고, 양관과 화관이 붙어 있고, 서재는 일본식 외양에 내부는 서양식 도서관이고, 그 안에 다다미로 된 공간이 있고... 그런데 그 공간 안에 또 일본식 정원을 들여오죠. 일본식인데 일본을 통해 들여온 서양식인 셈이에요. 그게 어쩌면 우리 근대의 모습인 거죠. 식민지 근성이 배어 있는 사람들 머릿속에선 그렇게 혼합되어 있을 것 같았어요. 그건 언어나 의복의 사용도 마찬가지죠.

Q. 코우즈키의 책 수집이라는 것도, 음란 서적과 춘화를 서양식으로 제본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백작이라는 칭호도 그렇고요. 후지와라와 코우즈키는, 조선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일본 사람인 척하는 거죠. 그래서 히데코가 편지를 쓸 때 "나고야의 귀족을 만나서 목소리의 귀족적인 떨림까지 연구하시는 이모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뭐 이러는 것처럼, 그런 게 식민지 근성이겠죠.

    

1.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엔 히데코의 어릴 적 모습과 성인이 된 모습이 초상화로 걸려 있다. 하녀는 이 계단으로 올라가지 못한다.    

2. 히데코는 숙희와 함께 드디어 집을 탈출한다. 아주 얕은 담이지만, 그것을 넘는덴 큰 용기가 필요하다.    

Q. 젊은 여성이 집을 떠난다는 설정이 이 영화에서 중요합니다. 숙희는 보영당을 떠나서 집으로 왔고, 두 사람은 코우즈키의 저택을 함께 떠나니까요.

사실 [스토커]도 그런 얘기죠. 소녀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 독립을 하고 자유를 얻는다는 건, 성장 과정에서 필수적이며 중요한 모멘트예요. 숙희가 내레이션에서 그런 말을 하죠. 한밑천 잡아서 조선 땅 뜬다고. 어떻게 보면 헬조선 탈출인 건데...(웃음) 그렇게 두 사람은 상하이로 함께 가는 거죠. 그런 억압적인 시대의 가부장적인 세계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중요했어요. 코우즈키의 집에서 도망칠 때, 담장이 매우 낮다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도 히데코는 못 넘어갔던 거니까요. 억압이 심리적으로 내면화된 상태였고, 그걸 극복하는 걸 결정적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숙희인 거죠.

Q. 언어적인 면도 흥미롭습니다. 조선어와 일본어 그리고 캐릭터들의 내레이션이 섞여 있습니다.

히데코가 다섯 살 때 조선에 왔는데, 그녀에게 일본어는 단지 말은 책을 읽기 위해 사용하는 따분한 언어죠. 어찌 보면 너무 음란한 것을 실제 경험 없이 읽기만 하니 따분한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일상의 언어는 조선어가 더 좋은 거고요. 반면 코우즈키에게 일본어는 신성한 언어죠. 마지막에 지하실에서 후지와라와 조선어로 대화하는데, 이건 밑바닥까지 내려왔기에 가능한 거예요.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서재는 폐허가 되었고 머리는 산발되고 옷도 아무렇게나 입고... 폐인이 된 거죠. 어쩌면 그때 코우즈키는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접속사나 책 제목을 말할 땐 일본어를 섞어서 쓰죠, 감정이 욱하고 튀어나올 때도 그렇고요. 요즘으로 치면 대화에 영어를 섞어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야기 - 반복과 시점
    

1. [아가씨]의 신들은 반복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숲 속의 후지와라와 히데코 신은 대표적이다.    

2. 숙희가 바라볼 때 창 안에서 후지와라와 히데코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걸까?    

Q. 이야기 구조가 흥미롭습니다. 이번엔 여러 겹이 있다고 할까요? 1부에 등장하는 장면은 2부나 3부에 와서 반복되거나 보완되면서 완성됩니다. 영화가 다 끝나야 각 신들이 비로소 퍼즐처럼 맞춰지는 셈인데요, 그렇게 보면 기승전결의 직선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영화 전체가 순환하는 하나의 덩어리처럼 다가옵니다.

원작에서 좋았던 것들 중에 가장 큰 게 그거였고, 그 점을 더 부각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필요 없는 부분을 들어낼 때도, 각 장면이 반복되면서 같은 상황을 다른 시점으로 다시 보는 구성에 집중했고요. [올드보이](2003)처럼 반전이 중요한 영화는 후반부에 그 반전을 배치하는데, [아가씨]는 러닝타임의 절반도 안 됐을 때 결말에서나 맛볼 법한 반전이 등장하죠. 그다음부터는 그 반전의 충격을 가라앉히면서 다른 종류의 재미로 넘어가는 구조예요. 그건 충격이나 반전 같은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느냐의 문제죠. 진실을 알고 나서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며 복기할 때, 그것은 반전을 중시하는 내러티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구성이기에,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는 거죠.

Q. 같은 장면을 다른 시점에서 보는 '시점 숏의 게임'이 있습니다. 여기서 극적 쾌감이 만들어지지만, 사실 이런 방식이 남용되면 뻔해지는데요, 그 적정선은 어느 정도라고 보셨는지요.

나는 그런 설정을 정말 더 많이 하고 싶었어요. 초고엔 더 많았고요. 하지만 러닝타임이 길어지니까... 사실 지금도 긴데...(웃음) 그래서 압축할 수밖에 없었고, 편집 단계에서 좀 더 줄었죠. 그리고 이런 부분이 너무 많아지면, 만약에 내가 관객이라면 "알았어. 네가 뭘 추구하려는지 알 것 같은데 이제 충분히 봤어" 그럴 거 같더라고요.(웃음) 그런 단계가 오지 않도록 조심한 거죠.

이미지 목록
    
    

1, 2. 신의 반복과 함께 시선이 더해지면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Q. 1부엔 딱히 시점이 없던 숏이 2부엔 누군가의 시점 숏으로, 특히 엿보는 시선으로 보이곤 하는데요, 재미있는 건 섹스 신만큼은 그런 시선을 완전히 배제하셨습니다. 관습적인 방식이라면, 섹스 신에 후지와라나 코우즈키의 관음적 시선이 개입될 법도 한데 말이죠.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어요. 시나리오 초기 단계의 아이디어 중 하나였는데...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1부에서 섹스 신이 있을 것처럼 시작해서 본격적인 단계로 나아가기 직전에 자르죠. 그랬을 때 관객들은, 마치 코우즈키가 마지막 신에서 말하는 것처럼, "뭐야, 이거! 이야기는 과정이 생명인데 왜 하다가 말아" 이럴 수도 있겠죠.

반성적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이겠지만,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는 건, 에로틱한 걸 기대하는 관객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죠. 섹스 신이 펼쳐질 것 같다가 딱 멈추고, 노출도 없고 이야기도 중단되니까요. 그러다가 2부에서 그 신이 반복되는데, 뜻하지 않게 갑자기 강한 장면이 등장하게 되었을 때, 그때는 관음적인 시선이 아니라 일종의 해방의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히데코와 숙희, 두 사람 사이에 진짜 사랑과 연대감이 생겼다는 느낌으로 온전하게 가고 싶었던 거죠.

Q. 영화에서 레즈비언 섹스 신이 등장할 때, 두 여성에게 남녀의 성 역할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아가씨]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완벽한 대칭 구도로 보여주고요.

섹스 신뿐만 아니라, 두 여자의 관계 전반에서 "누가 남자 역할이야?"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누가 남자고 누가 여자 역할인가"라는 상투적인 질문에서 자유롭고 싶었고요. 예를 들어서 숙희가 더 능동적이라고 해서 남자 역할인가?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거죠.

Q. 사실 후반부에 두 사람이 상하이로 갈 땐 히데코가 남장을 하기도 하죠.

그렇죠. 사실 그런 구분은 정말 의미가 없어요. 남성성이 능동적이고 여성성은 수동적이라는 식의 고정관념도 없어야 하는 거고요. 흔히 생각하는 여성성, 남성성 자체가 무화되고 무의미해지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촬영과 미술 - 완벽한 작업
    

1. 현장의 정정훈 촬영감독과 박찬욱 감독    

2. 현장의 류성희 미술감독과 박찬욱 감독    

Q. 촬영과 미술의 컬래버레이션이 놀랍습니다. 시각적인 부분에서 어떤 플랜을 세우셨는지요.

그게 참... 나도 그런 부분에 대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데... 영화 작업을 할 때 우리가, 짧은 문장으로 정리해서 "이 영화의 비주얼은 이런 게 아닐까? 이렇게 합시다"라고 말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놓고 각자 감을 잡고 구체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만약 '서재'라는 공간을 이야기한다면 처음부터 제가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적 풍경이 이런 거야!"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외부와 내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하나씩 이야기해나가는 과정이에요.      정정훈 촬영감독과는 전부터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적응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고민했어요. 그래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는 HD로 촬영했는데, 결국 다시 필름으로 돌아와서 [박쥐](2009)와 [스토커]를 찍었죠. 그런데 한국에선 더 이상 필름 작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아가씨]는 할 수 없이 디지털로 찍게 된 거고요. 나름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 디지털의 장단점에 대한 고민을 해왔는데, 결론은... "보수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필름 룩'(film look)만이 진리"라는 거예요.(웃음)

Q. 보수주의자보다는 근본주의자에 더 가까우신 거 같은데요?(웃음)

그렇죠.(웃음) '필름 룩'을 억지로 흉내 내는 거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아가씨]에선 1970년대에 만들어진 애너모픽 렌즈를 썼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때 만들어진 건 아니고, 그때의 렌즈를 약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유지한 채 복각한 거예요. 내 생각엔, 아직도 미국이나 유럽에선 필름으로 영화를 찍긴 하지만, 그들이 만든 그 어떤 필름 영화보다 [아가씨]가 더 '필름 룩'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1. 다다미 양식의 서재 바닥과 계단식 객석    

    

2. 서양식 서가    

Q. 카메라 워크가 정적일 수밖에 없는 공간적 설정인데,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동적인 힘이 느껴집니다. 정중동의 느낌이랄까요...

애너모픽 렌즈의 특징인지도 모르죠. 2.35:1의 와이드스크린 화면에선 카메라 움직임이 조금만 있어도 움직임이 크게 느껴지는 데다, 이 렌즈는 심도가 얕은 편이고 포커스를 움직이면 굉장히 크게 느껴져요. 상하좌우의 포커스가 약한데, 포커스 맞은 부분과 안 맞은 부분의 차이가 좀 더 과장되게 느껴지는 거죠.

Q. 공간적으로는 서재가 매우 독특한 느낌입니다.

서재는 백미죠. 어떻게 만들지 고민이 굉장히 많았어요. 영화사 옆방에 있는 류성희 미술감독과 하루에도 몇 번씩 상의를 해가면서 만들었어요. 외관은 일본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고 내부는 한국에서 세트로 만들었는데, 도서관처럼 서가가 양쪽에 있고 가운데 복도는 경사가 져서 내려가게 되어 있는 구조죠. 그리고 그 끝엔 계단 형식의 객석이 있고, 바닥은 다다미 방식이에요. 재미있는 건 정원이죠. 다다미의 일부를 들어내고, 그 안에 자갈이나 흙이나 모래를 채워 넣어 완벽한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어요. 코우즈키가 생각하는 이상적 공간이고 그만의 낙원인 셈이에요. 일본 미학의 정수라고 하는 정원을 이 공간에 끌어들여서 자기만의 우주를 만드는 거죠. 그리고 저 구석에 다다미를 열면 지하로 내려가는 공간이 있죠.

리듬 - 물결에 흘러가듯
    

1. [아가씨]의 히데코    

2.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히로인이었던 다카미네 히데코. [부운](1955)의 한 장면    

Q. 계속적으로 노래가 등장한다든가, 사운드 브릿지를 자주 사용한다든가, 영화 전체에 어떤 리듬이 느껴집니다. 감독님 영화 중에 편집의 힘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그 리듬이라는 게,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그걸 중시한 건 사실이죠. 반복에 대한 영화니까요. 반복이 지루해지거나 단조로워지지 않기 위해선 리듬이 중요했어요. 2부에 가면 신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다고 느껴지기 힘들 만큼 하나로 흘러가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리듬이 가능한 건, 1부에서 이미 본 사건들이기 때문이겠죠. 사실 영화에서 음악은, 그 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게 아니라, 영화 전체의 리듬을 부여해주기에 중요한 거거든요. 이게 가장 중요한 기능이죠. 음악 자체가 가진 리듬, 화면과 만났을 때의 리듬, 음악의 길이... 그리고 음악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느냐, 또 음악이 언제 있고 언제 없느냐... 이 요소들로 만들어지는 게 리듬이죠. 그것과 편집이 어우러져야 하는 거고요. 리듬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점에서 [아가씨]는 세 파트로 이뤄졌지만 통합된 한 편이기도 해요. 배를 타고 실려 가듯이 물결을 타고 넘어가는 영화, 파도가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지만 그 물결을 타면서 그렇게 흘러가는 영화가 목표였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민희가 맡은 히데코 캐릭터는, 자연스레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 나오는 다카미네 히데코(1924~2010)를 연상시킵니다. [친절한 금자씨](2005)의 베이커리 이름을 '나루세'라고 붙이신 적도 있고요. 오마주인가요?

영화에서 일본 여성 캐릭터 이름이 필요하다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었어요. 나루세 미키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본 감독이고, 다카미네 히데코는 최고의 일본 여자 배우죠.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레오스 카락스는 만났다고 하더라고요. [나쁜 피](1986)로 일본에 홍보차 갔을 때 다카미네 히데코를 안 만나게 해주면 안 떠나겠다고 '깽판'을 쳤다고 하더라고...(웃음)

Q. 다카미네 히데코가 나루세 미키오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여성상과 [아가씨]의 두 여성 캐릭터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카미네 히데코를 좋아하는 거고, 그러기에 히데코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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